
■ 줄거리
1952년 5월, 일본의 시골 마을.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함께 낡은 저택으로 이사 온 사츠키와 메이 남매는 어머니가 요양 중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간다. 첫 날부터 아이들은 그 집에서 검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작은 정령들을 목격한다. 메이는 숲 속 도토리 나무 구멍에서 거대하고 포동포동한 토토로를 만난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사츠키도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우산을 잃어버린 토토로를 만나 우산을 씌워주고, 그로부터 도토리 씨앗을 받는다. 토토로는 밤마다 아이들을 자신의 배에 태우고 하늘을 날며 놀아주고, 집 뒤뜰에 심은 도토리 씨앗으로 하룻밤 사이 거대한 나무를 키운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퇴원이 병세 악화로 연기되자 메이는 혼자 병원으로 향한다. 길을 잃은 메이는 결국 실종되고, 온 마을이 수색 중 저수지에서 메이의 샌들만 발견된다. 절망에 빠진 사츠키가 토토로를 부르자, 토토로는 고양이 모양의 신비한 버스를 불러낸다. 그 버스는 사츠키를 태우고 메이를 찾아내며, 어머니의 쾌유로 가족은 일상을 되찾는다. 하지만 토토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 주요 등장인물
● 사츠키
11살의 사츠키는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존재다. 어머니가 없는 집에서 메이를 챙기고, 학교에 다니고, 아버지를 돕는다. 그런 책임감 강한 소녀가 토토로를 만나면서 자신 안의 아이다움을 되찾는다. 처음엔 토토로를 믿지 않던 그녀가 버스 정류장에서 우산을 씌워주는 순간, 그녀는 완전히 변한다. 영화의 절정인 메이 실종 사건에서 토토로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모든 감정이 응축되어 있다. 사츠키는 단순한 착한 누나가 아니라, 상실과 회복을 경험하는 하나의 온전한 인물이다.
● 메이
4살의 메이는 호기심의 화신이다. 낡은 저택의 어두운 방도 두려워하지 않고, 숲 속 도토리 나무 구멍도 망설임 없이 들어간다. 토토로를 처음 만날 때 그녀가 보이는 반응—"음?"이라는 한 마디와 작은 손으로 토토로를 만지는 행동—은 순수한 감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메이의 실종은 그 순수함이 빚은 비극이지만, 동시에 가족을 구원하는 계기가 된다. 그녀는 이 영화의 정서적 중심이자, 경이로움 자체의 화신이다.
● 아버지 (구사카베 타쓰오)
아버지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침묵 속에는 신뢰가 담겨 있다. 아이들의 토토로 이야기를 듣고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이며, 심지어 큰 나무에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따뜻한 순간 중 하나다.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아이들의 상상의 세계를 존중하는 부성상은 매우 드물다. 그는 어떤 설교도 하지 않으면서도,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 토토로
토토로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상징에 가깝다. 그것은 숲이고, 신화적 존재이며, 동시에 아이들의 상상력이 투영된 대상이다. 토토로가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것은 토토로가 인간의 언어로 소통할 수 없다는 뜻이며, 따라서 아이들은 자신의 감각으로만 토토로를 이해해야 한다. 고양이 버스를 부르는 장면에서 토토로는 초월적 힘을 드러내지만, 본질은 따뜻하고 장난기 많은 동반자다.
■ 총평
《이웃집 토토로》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창립작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장 순수한 영화다. 이것은 결코 단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영화는 1950년대 초 일본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이는 전후 급속한 근대화 속에서 사라져가던 전통적 삶의 방식을 기록하는 행위다. 낡은 저택, 신비로운 숲, 그 속에 사는 정령들—이 모든 요소는 이미 사라진 일본의 모습이다. 미야자키는 이 상실을 슬퍼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 회상 속에서 경이로움을 되살린다.
어머니의 병, 메이의 실종, 새로운 환경으로의 이주—이런 요소들이 일반적인 영화라면 극적 갈등의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악당이 없다. 해결해야 할 문제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일상과 그 속에 스며 있는 신비로움뿐이다. 플롯은 느슨하고, 사건은 소소하며, 대사는 최소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아니, 그렇기 때문에—이 영화는 깊이 있는 감동을 전한다.
화면의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다. 낡은 저택의 목재 결, 숲의 초록색 음영, 메이가 입은 옷의 주름까지 모든 것이 정성스럽게 그려졌다. 이는 결코 기술적 부족이 아니라, 의도적인 선택이다. 완벽한 완성도보다는 따뜻함을 택한 것이다. 조 히사이시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웅장하지 않고, 오히려 소박하고 반복적이며, 때로는 단순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어떤 깊이가 있다. 토토로 테마곡은 신비로움, 따뜻함, 그리고 어딘가 슬픈 향수를 모두 담아낸다.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이유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보편성 때문이다. 모든 문화권의 아이들은 신비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모든 부모들은 아이의 그런 경험을 존중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상실된 무언가—어린 시절의 경이로움, 자연과의 교감, 가족과의 따뜻함—을 그리워한다. 《이웃집 토토로》는 이 모든 감정을 건드린다.
물론 비평적으로 지적할 점도 있다. 구조적으로 매우 느슨하며, 플롯의 전개가 거의 없다. 영화는 순수하게 분위기에 의존한다. 이것이 강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 될 수 있다. 어떤 관객에게는 이 느슨함이 명상적이고 아름다울 것이고, 어떤 관객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다. 그것은 개인의 감수성에 따른 문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집 토토로》는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것은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건드리고 영혼을 치유하는 예술 매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이 영화는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토토로는 결국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의미다. 신비로움은 찾으려고 할 때는 절대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숲을 걸을 때, 낡은 저택의 어두운 복도를 지날 때,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만 나타난다. 《이웃집 토토로》는 그 순간의 가치를 영원히 기록해두는 영화다. 그것이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힘이자, 가장 깊은 슬픔이다.